TypeJournal
DateJanuary 19, 2021
리눅스 운영체제로 가꾼 소리텃밭
애플(Apple)사의 제품을 더이상 사지 않기로 마음먹은 지 십여년이 되었습니다. 해외의 애플매장에서 반품요구 시 사기꾼 취급을 당한 것이 계기가 되었고 1991년부터 20년가까이 사용해 온 애플사의 제품을 그때부터 더이상 구매하지 않기로 하고 눈을 돌려 다른 컴퓨터와 운영체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접하게 된 리눅스는 지금까지도 제 컴퓨터의 운영체제이자 작업환경입니다. 영어로 오퍼레이팅 시스템( Operating System ), OS라고 줄여부르는 운영체제는 컴퓨터의 각종 하드웨어를 관장하고 연산에 필요한 리소스들을 운용하며 여타 응용 프로그램들의 상위에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 애플의 맥OS, 리눅스 등이 현재 컴퓨터에 쓰이고 있는 주된 운영체제이고 작은 컴퓨터인 스마트폰 역시 안드로이드(Android), 혹은 아이오에스(iOS)와 같은 운영체제를 가지고 있습니다.리눅스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이 운영체제에 대한 접근성입니다. 원하면 운영체제를 사용자가 직접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달리 얘기하면 내가 원하는 운영체제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스템의 노예’라는 표현은 운영체제에서 가장 적확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보통 ’운영체제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상용운영체제가 제공하는 편의성의 이면에는 이윤추구를 목표로 하는 거대기업의 치밀한 상업전략이 숨어있습니다.
한번 익숙해진 시스템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운영체제를 익히고 새로운 컴퓨터 프로그램을 다루는 기술을 익히는데 드는 수고와 노력의 시간을 대다수의 사람들은 굳이 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상용운영체제는 이것을 완벽하게 공고히 하려고 노력하며 그것으로 수익을 얻어냅니다. 그들의 마케팅 전략은 곳곳에 교묘하게 숨어있고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광고에 우리는 수없이 노출됩니다. 그들의 제품을 쓸 수 밖에 없도록 부지불식간에 세뇌되고 중독되어 갑니다. 그 시스템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못 느끼게 하기가 그들의 최고의 전략입니다. 그냥 거기서 평생을 머무르게 하기, 그래서 평생의 고객으로 남게 하기. 그들은 전략적으로 더 쓸 수 있는 것을 더이상 못쓰도록 운영체제를 바꿔버립니다. 일반인들에게 필요없는 수많은 기능들을 끼워넣어 더이상 내 컴퓨터, 내 전화기에서 구동되지 않도록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시스템의 ‘또 사야만 하는’ 노예입니다.
‘그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면, 업그레이드와 업데이트로 포장된 그들의 마케팅전략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이런 꿈을 가져본 이들에게 리눅스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편의성 면에서 상용운영체제와 비교하여도 떨어지지 않으며 기존에 사용하던 상용프로그램들을 대체할만한 무료프로그램들이 많아졌습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사진을 편집하고 이메일을 보내고 웹을 서핑하고 온라인뱅킹을 이용하는 대다수의 컴퓨터 작업이 리눅스에서 무료로 가능합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운영체제를 고를 수 있기에 하드웨어의 성능이 떨어져도 충분히 오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광고와 악성코드, 각종 바이러스들로부터 자유로우며 특정회사의 하드웨어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컴퓨터에 리눅스 운영체제를 사용할 수 있을정도로 하드웨어 드라이버 지원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물론 새로 배워야하고 상용프로그램들이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들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고 온라인에서 스스로 찾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리눅스를 사용하는 활발한 전세계의 커뮤니티가 있고 이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도움으로 운영되는 각종 웹사이트들로부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리눅스운영체제에서 일군 제 작은 텃밭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머신러닝 서버에는 상용프로그램을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농부라면 내 밭에서 일군 제대로 자란 열매의 맛을 알 것입니다. 그 열매의 맛이 번질한 겉모습과 꼭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며 상업적인 기존의 농사법의 문제점들과 해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유기농법에 드는 농부의 수고와 정성이 얼마나 크며 또 그것이 보상받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 것입니다. 일면 낯설고 멀게 느껴질 제 소리농사는 그러한 농부의 경험적 인지능력에 기대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고 여겨지며 그간의 작업을 짧게 풀어 적어봅니다.
머신러닝을 통해 국악기의 오디오를 분석하고 학습시켜 새로운 음원을 생성하는 프로젝트를 2020년 7월부터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한가지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국악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입니다. 일제 강점기의 단절된 역사와 왜곡된 전통은 우리의 뿌리마저 흔들어 놓았습니다. 잘못된 열매를 따먹고 자란 세대들의 대를 이은 충성은 가야금으로 ‘Let it be’ 를 연주하면서 그것을 퓨젼이라고 부르는 매우 안타까운 상황을 만들게 됩니다. 국악을 담을 수 없는 형식인 서양의 오선보를 보면서 국악을 연주하게 된 것이죠. 구음전승의 전통은 사라지고 새로운 시도라는 미명아래 벌어진 국악의 잔혹사는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오디오 머신러닝을 통한 연주의 학습은 기존의 악보학습에 비하여 악보에 담을 수 없는 연주자의 섬세한 주법까지 컴퓨터에 의해 습득이 가능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연주음원을 생성해 냅니다. 50만번 정도의 트레이닝으로 꽤 정교한 장구와 가야금 소리를 생성해 낼 수 있었고 그 생성된 음원은 학습에 기반한 즉흥연주에 가깝습니다. 소리온도(Temperature), 정적 임계점(Silence Threshold)와 같은 변수를 조절하고 동적 변조 신호 (Dynamic Modulation Signal)을 이용해 생성음원의 제어는 가능하나 이는 연주의 빈도수와 음색의 변화와 같은 것에 국한됩니다. 기본적으로 컴퓨터는 자신의 학습에 기반하여 제시된 시작오디오를 분석, 그다음 점을 찍어나가 파형을 만들게 됩니다.
이 작업의 중요한 목표중에 하나는 연주자에게 자신의 연주에 내포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AI 무당이 만들어낸 방언과 같은 음원들을 들려줄 때 연주자의 반응은 대부분 안도의 한숨입니다. 역시 기계는 멀었구나, 이세돌같이 되지는 않겠구나, 대단한 음악적인 것이 나올 줄 알았는데 결국 ‘노이즈’구나. 노이즈는 이 작업의 주된 결과물이었고 이것을 줄여나가 연주자의 귀를 솔깃하게 할만한 소리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했으므로 그럴듯한 연주와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수적이었습니다.
두번째 단계는 서로다른 데이터를 혼합하여 학습시켜 생성시키는 실험을 진행하였는데 남자구음과 여자구음을 합쳐서 학습하고 또는 가야금과 장구를 합쳐서 학습한 후 생성시켰고 결과를 아래에서 들어볼 수 있습니다. 서로다른 두개의 소리들이 주고받는 합주가 되거나 장구소리에 가야금의 음색이 더해지는 효과가 만들어졌습니다. 데이터의 혼용은 가져오는 흥미로운 결과는 작업의 부산물로 취급되는 수많은 노이즈들을 동반하고 이 노이즈들을 다시 학습데이터에 포함시켜 트레이닝하려고 합니다. 학습데이터 내 노이즈 빈도수에 따른 생성음원의 또다른 음색을 기대하고 그 새로운 소리의 가능성을 꾾임없이 탐구해보려고 합니다.
농촌을 삶의 터전으로 삼으려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도시생활이 주는 편의성을 포기하는 과정이 수반됩니다. 하지만 이내 적응하게 되고 지출을 비교하며 내가 얼마나 쓸데없는 소비를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없어도, 그것을 먹지 않아도, 그것을 보지 않아도 살 수 있으며 그 빈자리를 더 나은 것들로 채울 수 있음을 알아갑니다. 이는 리눅스 운영체제를 사용해 보려는 큰 마음을 먹는 이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상용프로그램들을 하나씩 대체해나가면서 황무지를 개간해 나가는 개척자의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그간 써오던 운영체제가 편하긴 했지만 절대적으로 종속될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보안이라는 명목의 시스템업데이트로 그간 문제없이 써오던 많은 프로그램들을 못쓰게 되어 버리는, 그래서 또다시 지출해야하는 돈이 얼마나 컸었는지 알게 됩니다. 물론 모든것이 대체 가능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컴퓨터게임은 리눅스를 지원하지 않고 상용프로그램들이 주는 서비스들에서 소외되며 자신이 직접 해야만 하는 컴퓨터 관리의 과정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 없이도 살 수 있고 그 편리함을 포기할 때 오는 또 다른 가능성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것이 가능한 컴퓨터가 아닌 내가 필요한 것만을 적절히 최적화시킨 컴퓨터를 사용하게 됩니다.
지구상의 대다수가 이용하는 운영체제를 만든 회사는 물론 가장 큰 재벌기업들이고 우리는 그 서비스의 달콤함에 요금을 지불하는 고객이자 평생을 바쳐 헌신하는 노예입니다. 문제는 그 운영체제를 한 나라의 운영체제로 아직까지도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가와 지자체의 컴퓨터 운영체제가 특정기업의 것으로 그것도 외국회사의 것으로 정해지고 우리는 그 미국기업에 매해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의 공기관의 모든 컴퓨터에 이 시스템을 이식해 두었습니다. 초기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치고 이제는 천천히라도 바꾸어가야 합니다. 리눅스에 기반한 오픈소스솔루션으로 바꿔야 하고 국민들에게 무료로 제공, 교육하며 그 영역을 넓혀나가야 하겠습니다. 경기도가 추진하고 있는 특정기업의 워드프로세서 ’한글’ 대신 리눅스에서 주로 써왔던 오픈도큐먼트텍스트(Open Document Text, .odt)로의 ‘탈HWP’ 선언은 매우 고무적이고 범나라차원으로 확대되어야 할 것입니다.
© 2024 Byungjun Kwon All rights reserved.